[뉴스펭귄 남주원 기자] 맛도 좋고 영양분도 풍부해 많은 이들이 즐겨먹는 굴. 그런데 살을 먹고 난 뒤 남은 '껍데기의 행방'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양식 굴만 놓고 보더라도 굴 껍데기는 매년 전체 생산량의 40%인 약 12만 t이 보관 및 방치된다. 현재까지 총 누적량은 92만 t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산지 매립이나 어장 투하, 자체 농지 활용 등 집계 불가한 경우는 제외한 수치다.

그렇다면 그 많은 굴 껍데기는 어떻게 처리되는 걸까? 가정에서 나오는 소량의 굴 껍데기는 종량제봉투에 넣어 배출하므로 굴 껍데기를 일반쓰레기로만 여기기 쉽다. 하지만 굴 껍데기도 '재활용'이 된다.

굴 양식장이나 가공업체 등 관련 사업장의 경우 해마다 무수히 발생하는 굴 껍데기를 건축자재 원재료, 비료, 사료, 공유수면 매립지역의 성토재 등으로 재활용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해양수산부가 굴 껍데기와 같은 수산부산물의 자원화 가능성에 집중함으로써 앞으로는 위 유형뿐만 아니라 화장품, 의약품, 식품첨가물 원료, 석회석 대체재 등으로도 재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수산부산물이란 수산물의 포획·채취·양식·가공·판매 등 과정에서 기본 생산물 외 부수적으로 발생한 뼈, 지느러미, 내장, 껍질 등을 말한다.

해양수산부는 수산부산물을 단순 폐기물이 아닌 고부가가치를 갖는 자원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수산부산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수산부산물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제정령안을 마련, 지난 23일부터 5월 3일까지 40일간 입법예고한 바 있다.

제정령안은 ▲수산부산물법이 적용되는 수산부산물 종류 ▲수산부산물 재활용 유형 ▲수산부산물 분리배출의무자 범위 ▲수산부산물 처리업 허가요건 ▲수산부산물 분리배출 및 처리 기준과 절차 등 내용과 그에 따른 필요사항을 담고 있다. 입법예고가 끝나면 규제심사와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오는 7월 21일부터 시행된다.

해당 법안이 적용되는 수산부산물 종류는 굴, 전복(오분자기 포함), 홍합(담치 포함), 꼬막(피조개 포함), 바지락, 키조개에서 내용물을 제거한 껍데기다. 이는 실제로 현재 재활용이 이뤄지고 있는 것들로 이번 제정안에 포함되지 않은 품목은 향후 추가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에 이어 굴 생산국 세계 2위다. 경상남도 통영이 국내 굴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데 그동안 굴 껍데기는 지역 주민들에게 골칫거리, 애물단지 취급을 받아온 터였다.

굴은 경남 일대 경제를 책임지는 효자 노릇을 하는 반면 그 껍데기는 곳곳에 산처럼 쌓인 채 악취와 미관 훼손, 해충 발생 등 각종 문제를 야기해 지역 주민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굴 껍데기 등 사업장폐기물로 버려지는 수산부산물을 본격 재활용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앞으로는 지역 주민들 삶의 질 향상은 물론이고 자원 선순환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해외에서는 굴 껍데기를 활용한 다양한 사례가 있다. 대표적으로 굴을 이용한 방파제 사업이 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세계 최대 굴 생산지', '굴의 도시'라는 명성을 떨쳤던 미국 뉴욕은 2014년부터 굴 암초 벽을 복원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일명 ‘빌리언 오이스터 프로젝트(Billion Oyster Project)’라는 이 프로젝트는 인근 레스토랑 70여 곳에서 모은 굴 껍데기를 1년 동안 자연 건조한 뒤 양식한 굴을 부착해 바다에 투하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이렇게 해서 현재(2022년 3월 기준)까지 약 7500만 개가 넘는 굴을 복원했으며, 2035년까지 뉴욕 인근 바다에 굴 10억 개 이상을 키우는 것이 최종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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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뿐만 아니라 해수면 상승 등 기후위기 피해를 고스란히 받는 저지대 국가인 방글라데시를 비롯해 네덜란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미국 루이지애나주 등이 굴 방파제를 조성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굴 암초를 복원하는 이유는 이것이 '기후위기에 맞설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굴 암초는 위로 높아지는 특성이 있어 해수면 상승에 대응하기 좋다.

실제 방글라데시 남쪽 쿠투브디아 섬은 2014년부터 굴 암초로 방파제를 만들기 시작한 이후 해안 침식이 54%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굴 방파제가 거센 폭풍과 파도, 홍수로부터 육지를 보호해 준 덕분이다.

그 밖에도 천연 굴 방파제는 수질 개선 효과가 있다. 굴은 물속 유기물과 미생물을 빨아들인 뒤 깨끗한 물만 내뱉는데, 다 자란 굴 하나는 하루에 물 약 190ℓ를 정화한다.

또 녹조의 주범인 질소를 다량 흡수해 껍데기에 저장하므로 생물 다양성에도 기여한다. 녹조는 수중 산소 부족을 야기해 해양 생물에 위협이 된다.

새로운 개체가 자라면서 손상된 굴과 껍데기를 대신해 유지 및 보수 비용도 따로 들지 않으며 인공 방파제보다 해양생물에 적합한 서식 환경을 제공하는 등 여러 이점이 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수산부산물 자원화 및 재활용과 관련된 다양한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02년부터 ‘바이오매스·일본 종합 계획’을 수립해 매년 대량으로 발생하는 수산부산물을 바이오매스로 활용하고 있으며, 2003년부터는 ‘수산계부산물 활용 추진 모델사업’을 추진해 굴이나 조개 껍데기 같은 패각을 어장저질 개량제, 증식초, 토목재료 등 공공사업에 적극 사용 중이다.

우리나라도 굴 껍데기를 재활용하는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국내 최대 굴 생산지인 통영시는 한국남동발전, 굴수협과 협력해 굴 껍데기를 원료로 하는 배연탈황흡수제를 만들어 삼천포발전본부에 공급하기로 했다. 화력발전 때 나오는 배기가스 속 황산화물을 제거하는 데 굴 껍데기를 사용키로 한 것.

실제 굴 껍데기에 있는 석회 성분은 황산화물을 걸러 내는 배연탈황흡수제 원료로 많이 쓰인다. 이를 위해 통영시와 한국남동발전은 굴 껍데기로 배연탈황흡수제를 만드는 자원화 시설을 지어 2023년부터 가동할 예정이다.

또 현대제철과 포스코 등 국내 철강업계는 굴, 조개 껍데기 등 패각을 제철 부원료로 재탄생시키기로 했다. 굴 껍데기를 분해한 뒤 분말을 만들어 이를 제철소 소결공정(가루 형태의 철광석을 고로에 투입하기 적합한 소결광 형태로 가공하는 과정)에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소결광의 형태를 잡아주고 성분을 조절하는 용도로 석회석을 쓰는데, 이를 패각으로 대체함에 따라 탄소를 감축하는 효과가 있다. 전남·경남 지역에 방치된 패각 92만 t을 석회석 대신 사용할 경우 탄소 약 41만 t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굴 껍데기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환경적, 산업적 측면에서 각광받고 있다. 골칫거리였던 굴 껍데기가 환경도 지키고 경제도 살리는 일석이조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규제는 최소화하고 재활용은 촉진하는 이번 수산부산물법에 따라, 모쪼록 화장품과 의약품 등으로 탈바꿈할 '껍데기의 변신'을 응원한다.